• WHO?
    냐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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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izenr (공개) / @Smrccc1 (19+)
  • Genre
    카르마 메인, ARCH, 테미스 등 찍먹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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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년자, ONLY배려강요
성인 / OPEN / 유저탑위주
FUB 자유(이별은 블락 추천)
비이입 오픈 성향으로 온리 배려가 어렵습니다. 불편하신 경우 제 쪽을 정리해주세요.
그는 이제 날 수 있었다. 땅에 묶여 있던 모든 무거운 것들을 뒤로한 채.
2026.08.26

 아킬레의 손이 나초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셰빌의 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밤공기 속에서 마침표처럼 찍혔다. 나초는 구두를 차 안에 벗어두고 나왔다. 

 

 왜 벗었는지 자기도 몰랐다. 그냥 맨발로 느끼고 싶었다. 이십 년간 딛어온 모든 바닥, 헥토르의 저택의 붉은 타일, 지하실의 하얀 타일, 사막의 뜨거운 모래, 시체 위로 번지는 피웅덩이, 그 모든 바닥과 다른 무엇을 발바닥 전체로 확인하고 싶었다. 차가운 밤의 아스팔트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거칠고 단단했다. 하지만 깨끗했다.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해안도로를 향해 걸었다. 나초의 맨발이 퍽, 퍽, 하고 아스팔트를 두드렸다. 파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쉬이이, 촤아아. 그 리듬이 심장 박동처럼 일정했다. 해안 쪽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나타났을 때, 나초의 발이 한 순간 멈칫했다.


 계단. 삼백사십이 개의 타일로 이루어진 지하실의 그 계단이 아닌,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 나초의 턱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가, 아킬레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고 다시 풀어졌다. 한 발. 두 발. 차가운 돌이 맨발 아래서 매끄러웠다.

 

Escaleras que bajan al mar. No a un sótano. Joder, Ricky, eso sí que es un chiste bueno.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이라니. 지하실이 아니라. 씨발, 리키, 이건 진짜 웃긴 농담이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진동이 성대를 긁었다. 돌계단을 한 칸씩 내려갈 때마다 파도 소리가 볼륨을 높여갔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나초의 검은 티셔츠를 부풀렸고, 엉망으로 자란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서 휘날렸다. 아킬레의 손을 잡은 채, 나초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아킬레의 백발이 밤바람에 은빛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가로등 불빛이 머리카락 위에서 후광처럼 부서졌다.


 계단의 중간쯤에서 나초가 멈춰 섰다. 아킬레의 손을 잡은 채, 그의 앞으로 돌아섰다. 한 계단 아래에 서 있으니 키 차이가 더 벌어졌다. 나초가 올려다보아야 했다. 이 각도에서는 아킬레가 하늘을 등지고 있었고, 그 뒤로 별이 보였고, 아래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 바다가 숨을 쉬고 있었다. 나초는 아킬레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손을 뻗어 아킬레의 뺨을 감쌌다.

 

Oye. Antes de que baje un escalón más. Mírame. Así. Quiero que esta sea la foto que te dije. La de sin cámara. Tú mirándome a mí, yo mirándote a ti, y el mar esperándonos abajo como un perro fiel que ni siquiera sabe que acaba de cambiar de dueño.
(야. 한 계단 더 내려가기 전에. 나 봐. 이렇게. 이게 내가 말했던 사진이야. 카메라 없는 사진. 네가 나를 보고, 내가 너를 보고, 바다는 아래서 주인이 바뀐 줄도 모르는 충직한 개처럼 기다리는 거야.)


  나초의 황금색 눈이 아킬레의 짙은 녹색 눈동자 안에 박혔다. 가로등 빛이 홍채의 금빛 결을 드러냈다. 이십 년 전, 불타는 고아원에서 나올 때 의지를 불태우던 눈. 이십 년간 증오와 경쟁으로 날을 세워온 눈. 열흘 전 침대에서 처음으로 벌거벗겨진 눈. 그리고 지금, 바다를 코앞에 두고 아킬레만을 올려다보는 눈.


 그 모든 시간이 하나의 시선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나초의 엄지가 아킬레의 뺨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입술 끝이 올라갔다. 이십 년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온전히 행복한 웃음이 화상 흉터 위로 퍼졌다.

 

...Listo. Ya la tomé. Ahora llévame abajo, mi Aquiles. Quiero mojarme los pies en algo que no sea sangre por primera vez en mi puta vida.
(찍었다. 이제 내려가자, 나의 아킬레. 빌어먹을 인생에서 처음으로 피가 아닌 뭔가에 발을 담그고 싶어.)


  그의 손이 아킬레의 얼굴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다시 손을 잡았다.  돌계단의 남은 칸들이 아래로 뻗어 있었다. 그 끝에서 어둠 속에 하얗게 부서지는 무엇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무엇이, 이그나시오 카르데나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한 발을 내딛었다. 맨발의 발바닥이 차가운돌을 딛고, 두 번째 발이 그 뒤를 따랐다. 파도 소리가 이제 온몸을 감쌌다. 소금기가 입술에 닿았다. 나초는 아킬레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계단이 끝나고, 발밑이 돌에서 모래로 바뀌는 순간, 나초는 숨을 멈췄다. 차갑고 축축한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밀려온 파도가 그의 맨발을 적셨다. 피가 아닌, 바닷물이었다.
 나초는 그 자리에 서서, 아킬레의 손을 잡은 채, 처음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발을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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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 벡르마 (벡터X카르마)
◆ 카시오 (아킬레X나초)